작성일 : 14-08-07 13:30
[경향신문] 원자력 폐로 대책 ‘발등의 불’
 글쓴이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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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1) 준비 안된 한국… 노후 원전 폐로, 한국만 눈감고 있다

“정말요?” 독일생태연구소(에코인스티튜트) 베아테 칼렌바흐-허버트 원자력공학·시설안전부장은 대화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웃음을 빵 터트렸다. 꽤 진중하던 여성 과학자의 말과 표정은 “설계수명이 다한 원전의 수명연장(계속운전)을 계속 추진하고 있다”는 한국 얘기가 나오자마자 무너졌다. 어이없어 하는 박장대소였다. 불과 3년 전 일본의 원전사고를 바로 옆에서 지켜본 나라의 움직임으로는 믿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독일도 여름으로 접어든 지난 6월20일, 대화는 프랑크푸르트에서 차로 30분 달려간 헤센주의 공업도시 다름슈타트에 있는 그의 연구실에서 진행됐다. 칼렌바흐-허버트 부장은 “중고차도 부품을 갈아 끼우며 수리를 계속하면 폐차 시기를 늦출 수 있겠지만 그게 언제까지 가능하겠냐”며 “지금보다 안전기준이 낮았던 수십년 전 기준으로 만들어진 원전을 오늘날의 안전 요구 수준으로 관리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낯선 ‘폐로(廢爐)’라는 단어는 그의 말 속에서 수없이 반복됐다. 아무 준비도, 공감도 없는 대한민국 기자는 곧잘 말이 머뭇거려지고 얼굴이 화끈거릴 뿐이었다.

“부끄럽지만, 솔직히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일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일본 전문가 중에는 체르노빌·스리마일 다음으로 한국에서 사고가 날 위험성이 높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어요.”

▲ 미국 17기·독일 16기·일본 7기 ‘폐로’ 중… 한국은 0
“한국 원전 안전성 우려” 경고… 골든타임 놓치면 재앙


▲ 1973년 가동된 미국 자이온 수리 비용이 폐로 비용 넘자
수명 15년 남기고도 해체
수리·폐로 비용 같은 고리1호, 정부·업계 수명연장만 고집


지난 6월22일 일본 도쿄에서 만난 원전시민단체 ‘원자력자료정보실’의 고토 마사시가 안전성을 잣대로, 국제적 우려가 커져가고 있다고 지목한 것도 한국이었다. 화두는 2007년 설계수명 30년이 끝났고 연장(10년)한 수명(계속운전)도 3년 후면 완료되는 고리1호기였다. “눈앞에 보이는 문제가 없다”며 원전 수명을 늘려가는 것은 상존하는 위험을 무시·방치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시민단체에 몸담기 전 2009년까지 도시바사에서 원전 격납용기를 직접 설계했다.

고토는 노후화된 고리원전에서는 ‘취성 파괴’가 일어날 가능성과 원전 내 케이블·부품 등이 열화돼 제 기능을 못하게 될 가능성을 우려했다. 취성 파괴는 금속 물체에 음속 이상의 속도로 균열이 일어나는 현상을 말한다. 그는 “발전 과정에서 나오는 중성자를 압력용기에 쬐다 보면 금속성분이 탄력을 잃어 취성 파괴가 일어날 수 있다”며 “원전의 압력용기처럼 두꺼운 금속일수록 온도가 낮아졌을 때 이런 현상이 일어나기 쉽다”고 말했다. 고장이 나거나 정기 점검차 가동을 멈춰 온도가 낮아졌을 때가 가장 위험하며, 고리원전처럼 노후할수록 그 가능성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고토는 “고무로 된 케이블을 오래 사용하면 부식될 수 있다”며 “격납용기가 워낙 커 부식이 생겨도 사고가 나기 전까지 알 수 없다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일본 미하마 원전에서는 터빈 배관이 잘라져 사망자가 발생한 경우가 있다”며 “초음파나 X선으로 결함을 조사한다고 해도 지극히 복잡한 구조의 원전 내부를 100%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노후 원전의 폐로는 꼭 안전 문제뿐이 아니다. 지난달 7일 미국 시카고시 아르곤국립연구소에서 만난 로렌스 보잉은 “고리원전급 노후 원전들은 미국에선 이미 폐로가 되고 있다”며 경제적 타당성과 산업적 각도에서 폐로에 고개를 끄덕였다. 연구소에서 폐로 인력을 양성하고 있는 그는 “미국에서는 원전을 가동할 수 있는 인증기간이 끝나지 않았더라도 경제적 수지타산이 맞지 않으면 폐로를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실제 미국 미시간호 인근에 지어진 자이온 원전은 1998년 1월 운전을 정지하고 16년째 해체 작업을 하고 있다. 이 원전은 노형이 한국의 첫 상업원전인 고리1호기와 같은 가압경수로(PWR)이고, 고리1호기보다 5년 이른 1973년에 운전을 시작했다.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에서 2013년까지 운전 허가를 받았지만 15년 앞서 해체키로 한 것은 수리 비용이 폐로 비용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직접 눈으로 본 독일·일본·미국과 달리 한국의 폐로는 ‘제자리걸음’이다. 상업용 원전 12기를 해체한 미국은 현재 17기를 폐로 중이고, 원전 3곳을 문닫은 독일은 16기를 해체하고 있다. 일본도 7기를 폐로 중이나 한국은 없다. 정부와 한국수력원자력은 설계수명이 끝난 고리1호기·월성1호기의 수리 비용이 폐로 비용과 같은 수준까지 늘어났음에도 수명연장만 고집하고 있다. 한수원은 지난해 고리1호기 제30차 계획예방정비에서 원자로 헤드 등을 교체하며 2382억원을 들였다. 2007년에 1차 수명(10년) 연장 후 투입된 정비 비용은 4668억원이다. 월성1호기엔 2009년 약 6000억원이 들어갔다. 두 원전에 투입된 수리 비용은 정부가 원전 한 기당 폐로 비용으로 잡은 6033억원과 비슷한 수준이다.

한국의 폐로 대비는 극히 미흡하다. 법률부터 기술·비용까지 준비할 게 산적해 있고, 책임 있는 추진체도 보이지 않는다. 안전은 ‘천수답’처럼 방치한 채 국내 폐로시장만 송두리째 외국기업에 넘겨줄 상황이다. 탈핵단체들이 “총체적 난국”이라며 고리1호기를 멈추고 폐로를 위한 사회적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배경이다.

전문가들이 주목하는 것은 ‘시간과의 싸움’이다. 독일 폐로위원회(ESK) 폐로협의회장이자 민간 공인시험인증기관 ‘TUV Nord’의 폐로부서장을 맡고 있는 하인즈-월터 드로트레프 박사는 “한국도 원전 폐로를 당장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원전의 어떤 부분이 방사성물질에 오염됐는지 현장에서 일한 사람들이 가장 잘 알고 있다”며 “400~500개의 복잡한 내부 공간이 있는 원전의 폐로는 역사와 현장을 잘 아는 사람들이 남아 있을 때 시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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